하늘 추워지고, 온갖 잎새도 스러져가니 온갖 목숨이 아까운 계절 겨울이네요~🌈
겨울이라는 말은 “추운 날에는 집에 겻다(머물다)”에서 유래했다고 하네요~ 겻을이 겨울로 변형됐다는 것이죠~
엄청 추운 날에는 우리 눈에 파묻힌 집에 겻으면서 시집 한권 독파하는 건 어떨까요?🤩
겨울 사랑 / 박노해
사랑하는 사람아
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
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
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
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
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
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
추위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
내 온몸을 녹이는
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
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
아아 겨울이 온다
추운 겨울이 온다
떨리는 겨울, 사랑이 온다.
눈 위에 쓴 시 / 류시화
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
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
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
시를 쓴다지만
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
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
눈 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/ 이생진
시 읽는 건 아주 좋아
짧아서 좋아
그 즉시 맛이 나서 좋아
나도 그런 생각하고 있었어
하고 동정할 수 있어서 좋아
허망해도 좋고
쓸쓸하고 외롭고
춥고 배고파도
그 사람도 배고플 거라는 생각이 나서 좋아
눈 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
누가 찾아 올 것 같아서 좋아
시는 가난해서 좋아
시 쓰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해서 좋아
그 사람과 헤어진 뒤에도
시 속에 그 사람이 남아 있어서 좋아
시는 짧아서 좋아
배고파도 읽고 싶어서 좋아
시 속에서 만나자는 약속
시는 외로운 사람과의 약속 같아서 좋아
시를 읽어도 슬프고 외롭고
시를 읽어도 춥고 배고프고
그런데 시를 읽고 있으면
슬픔도 외로움도 다 숨어 버려서 좋아
눈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
눈에 파묻힌 집에서 사는 것 같아서 좋아
시는 세월처럼 짧아서 좋아
초겨울 편지 / 김용택
앞산에
고운 잎
다 졌답니다
빈 산을 그리며
저 강에
흰 눈
내리겠지요
눈 내리기 전에
한번 보고 싶습니다
첫눈 오는 날 / 정호승
남한테 비굴하게
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고
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
그렇지만
그렇지만
첫눈이 내릴 때
첫눈한테는 무릎을 꿇어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
그래서 그 날
첫눈 오는 날
길 잃어 쓰러진 강아지를 품에 안고
무릎을 꿇었습니다
겨울숲 / 문태준
숲에 새집이 이처럼 많았다니
높은 고립이 이처럼 많았다니
동트는 숲 위로 날아오른
은사(隱士)들은
북쪽 하늘로 들어가네
풍막(風幕)을 이쪽 겨울에 걸어놓은 채
풍막은 홀로 하늘 일각(一角)을 흔드네
음지에는 잔설이 눈을 내리감네
우리가 눈발이라면 / 안도현
우리가 눈발이라면
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
진눈깨비는 되지 말자.
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
사람이 사는 마을
가장 낮은 곳으로
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.
우리가 눈발이라면
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
편지가 되고
그이의 깊은 붉은 상처 위에 돋는
새살이 되자.
겨울의 문턱에서 / 오정방
이 겨울엔
설령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될지라도
능히 극복하고 헤쳐나갈 수 있기를
이 겨울엔
설령 곤고한 처지에 이르게 될지라도
오래 인내하고 잘 견뎌낼 수 있기를
이 겨울엔
설령 억울한 입장을 만나게 될지라도
용서로 보듬고 중보기도 할 수 있기를
이 겨울엔
설령 육신은 많이 갈하고 추울지라도
영혼만은 흡족하고 따뜻할 수 있기를
이 겨울엔
설령 원치 않은 이별을 당케 될지라도
조금도 후회 없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
겨울편지 / 안도현
흰 눈 뒤집어쓴 매화나무 마른 가지가
부르르 몸을 흔듭니다
눈물겹습니다
머지않아
꽃을 피우겠다는 뜻이겠지요
사랑은 이렇게 더디게 오는 것이겠지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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